18일 오전,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경찰과 기자들이 만원짜리 위조지폐 몇 장을 놓고 마주 앉았다. 30대 제과점 여주인 납치사건의 용의자가 경찰이 건넨 '수사용 위조지폐' 일부를 도피 용도로 사용한 사실이 확인된 지 하루 만이었다.

경찰이 내놓은 위폐는 진짜 돈보다 색깔이 조금 짙을 뿐, 겉보기엔 진짜 돈과 구분하기 어려웠다. 손으로 만져보니 진짜 돈보다 표면이 좀더 매끄러웠다.

경찰은 2005년 수사용 위폐를 처음 제작했지만 '실전'에 투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해자의 남편을 시켜서 용의자에게 위폐를 건넨 뒤, 돈 가방을 들고 달아나는 용의자를 추격해서 인질도 구출하고 위폐도 환수한다는 작전이었다.

문제는 경찰이 '만약의 경우'에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용의자를 놓칠 수 있다는 가정도, 위폐가 시중에 풀릴 수 있다는 가정도 하지 않았다. 위폐 유통을 막을 대책도 없었다. 과거에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작전을, 정교한 시나리오 없이 '무턱대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실 위폐 문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며 "강호순 사건도 있었으니까, 피해자가 풀려나기만 하면 언론에서 잘했다고 할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피해자가 살아 돌아온 것은 용의자들이 '어수룩하게' 위폐를 진짜 돈이라고 믿고 피해자를 놓아줬기 때문이지 경찰의 공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2인조 용의자 중 한 명은 붙잡혔지만, 다른 한 명은 8일째 도피 중이다. 그는 17일 오후 인터넷 직거래 사이트에서 알게 된 사람에게 위폐 700만원을 주고 중고 오토바이를 샀다. 18일 오전에는 이 오토바이를 다른 사람에게 되팔아 진짜 돈 400만원을 챙겼다. 경찰은 속수무책으로 추가 신고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