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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서도 이긴 여성, 사라 페일린
글쓴이 : 살랑살랑 날짜 : 09-02-22 12:49 조회 : 4890 추천 : 0
지면서도 이긴 여성, 사라 페일린
2008/12/19 오후 3:43 | 세계각국 문화 인물



대선에는 패배했지만,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난 미 대선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깜짝 지명되면서 최고의 화제 인물로 등장했던 사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44세). 백악관 입성에는 실패했지만 대선 열기가 가라앉은 지금도 헐리우드 스타 못지 않은 유명세를 누리고 있습니다.

사실 일부에서는 대선 중 제기됐던 자질논란 등을 이유로 '패배 후 페일린에게는 시골로 돌아가 다시 무명의 주지사로 살아갈 일만 남아 있다'고 평하기도 했었는데요. 이런 비아냥을 비웃기라도 하듯, 페일린의 몸값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목이 빠져라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이들은 바로 출판업자들과 방송국, 영화 제작자들.

대선이 마무리되면서 부시 대통령의 회고록, 행정부 사람들의 이야기 등이 출판될 것으로 보이지만, 에이전트들이 가장 큰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은 바로 페일린의 자서전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페일린이 패배 후 알래스카로 돌아가자마자, 전국의 출판사 발행인들과 에이전트들이 그녀를 뒤쫓아 알래스카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뉴욕의 한 출판사 에이전트는 "아무도 부시 대통령의 회고록을 기다리지 않는다"며 "페일린의 자서전이 불황으로 허덕이는 출판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기대했다는군요. 출판업계에서는 페일린 자서전에 최소 700만 달러(약 98억원)의 계약금이 지불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와 함께 자전적 영화 제작 및 출연 제의, 오프라 윈프리쇼와 데이빗 레터맨쇼, 제이 레노쇼 등 유명 토크쇼의 출연 제의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페일린의 내년 스케쥴은 빡빡합니다. 그녀에게 행사에 얼굴을 비춰달라는 요청이 전세계적으로 800건이 넘게 들어왔으며, 각국 미디어들의 인터뷰 요청도 200건이 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지난달에는 '성인영화계의 대부'라는 세자르 카포네가 페일린에게 "당신의 매력을 성인 영화에 담아보자"는 제안을 해왔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출연료로 200만달러(약 25억원)를 제시하면서 "낯선 남자와의 성인 연기가 부담스럽다면 남편과 함께 출연해도 좋다"고 덧붙였다는군요. 페일린 측은 이 제안에 대해 공식적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보수주의자들의 필수품'으로 꼽히는 2009년 페일린 달력. 페일린과 그녀의 남편, 다섯 아이들의 사진 50여장이 담겨 있다. 페일린의 친구이자 프로 사진작가인 주디 패트릭이 찍은 것이라고.


유세 연설뒤 고등학교 풋볼팀 선수들에게 열광적인 악수요청을 받고 있는 페일린

선거 기간 중 페일린의 인기가 치솟자 한동안 '매케인이 아니라 페일린이 대선후보처럼 보인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정치적인 행보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달 초 조지아주 연방 상원의원 결선투표에서 색스비 챔블리스 상원의원의 지원유세에 나선 페일린은 청중들을 열광시키는 연설을 해 '록스타'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 유세장에는 페일린의 차기 대권 도전을 의미하는 '페일린 2012'라는 피켓과 티셔츠로 무장한 지지자들이 눈길을 끌기도 했지요.

공화당 내에서도 그녀를 차기 대권 주자 중 하나로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공화당의 선거전략가인 에드 롤린스는 "페일린은 이미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공화당 정치인이 돼 있다"고 지적했지요. 내년에 알래스카가 갖고 있는 상원의석 두 개 중 하나가 공석이 되면, 그녀에게 알래스카주 상원의원으로 워싱턴에 진출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변방의 무명 주지사에서 세계적인 스타 정치인으로. 올 하반기, 페일린은 그야말로 극적인 데뷔를 했습니다.

지난 8월 말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44세의 여성 사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를 지명한다"고 발표했을 때, 워싱턴에서 그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전까지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 전 시장, 미트 롬니 매사추세츠 주지사 등이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을 뿐, 페일린의 이름이 등장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기자들은 페일린(Palin)이라는 그녀의 성을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으며 한 신문에서는 기사 제목으로 "사라...누구라고?"라며 생소한 후보에 대한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녀는 단숨에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는 보수파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페일린의 무기는 다름아닌 '가족'이었지요.  

8월 29일 오하이오 데이턴의 유세장에서 공식 데뷔를 가진 페일린은 남편과 다섯 자녀를 이끌고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 있는 19세 장남 트랙,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는 생후 4개월인 막내 아들 트리그, 고교 동창이자 스노보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번이나 챔피언을 달았던 남편 토드, 그리고 17세 고교생의 몸으로 임신을 한 장녀 브리스톨.




이 파란만장한 가족 이야기가 화제가 된 것은 물론입니다. 산전 검사에서 다운증후군 진단을 받았음에도 낳기로 결심한 막내 아들은 낙태를 반대하는 보수층의 마음을 끌었습니다.

반면, 맏딸 브리스톨의 임신은 후보 지명 초기에는 알려지지 않았었습니다. 9월초 언론에서 불거져 나오자 페일린이 사실임을 밝혔었는데요. 당시에는 딸의 임신이 페일린과 공화당에 악재가 될 것이란 의견이 다수였습니다. 가족을 중시하는 보수주의자가 딸이 '저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두었느냐는 비난이 나왔으니까요.

하지만, 페일린은 이같은 악재를 오히려 호재로 바꾸어 놓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녀는 담담하게 "딸이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조금 일찍 어머니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딸은 출산을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당연히 '예스'라고 말했다.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딸이 자랑스럽고, 손주를 얻게 되어 기쁘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사실, 10대들의 성문제로 골치를 앓는 것은 일반적인 미국 가정 모두의 고민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미국 중산층 부모들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10대 딸의 임신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며 의연하게 문제에 대처하는 페일린의 모습에 미국인들은 감탄과 친근감을 느낀 것이지요. 


페일린의 장녀 브리스톨과 18세의 남자친구(아기의 아버지) 레비 존스톤. 20일경 출산 예정인 브리스톨의 아이는 아들이라고.

페일린은 '다섯 아이의 엄마지만 정치도 잘할 수 있다'고 말하는 대신, '다섯 아이의 엄마니까 정치도 잘할 수 있다'고 말하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여성이고 어머니인 것이 사회 활동에, 정치에 방해가 된다는 고정 관념을 깨고 모성애가 나라를 이끄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 것이지요. 뉴욕타임스가 표현했듯 '모성과 정치의 퓨전'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동성결혼과 낙태에 반대하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총기 소지에 찬성하는 등 미국의 전통 보수성향에 딱 들어맞는 그녀에게 보수층의 지지가 모여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요.  

이처럼 감정에 호소하는 대중적 인기몰이에는 성공했지만, 정치권에서 그녀를 평가하는 눈은 싸늘했습니다. 일단은 페일린이 부통령감으로 적합하냐는 질문이었습니다. 페일린은 인구 6000명이 안되는 알래스카 소도시 와실라 시장을 거쳐 주민수 67만명인 알래스카 주지사에 오른 지 22개월인 것이 전부였으니, 정치적 자산이 빈약할 수 밖에 없겠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식견 부족'이 드러나 곤혹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한 해 동안 화제가 됐던 미국 각계 인사들의 발언을 모은 ‘예일 발언록(The Yale Book of Quotations)’은 "우리 집에서도 러시아가 보여요"라는 페일린의 말을 2008년 최고의 어록으로 선정했지요.

페일린은 지난 9월 CBS와의 인터뷰에서 앵커 케이티 쿠릭이 "외교 경험이 일천하지 않느냐"는 지적을 하자, "러시아는 알래스카와 인접해 있어, 알래스카의 섬에서도 러시아가 보인다"는 답변을 하여 시청자들의 실소를 자아냈습니다.

외교에 대해 할 말이 그렇게 없느냐는 야유가 뒤따랐습니다. 이어진 "정기적으로 읽는 신문이나 잡지를 말해달라"는 질문에서도 페일린은 "최근 수년간 내 앞에 놓여졌던 것들은 다 읽었다"는 다소 엉뚱한 대답을 했었는데요.

11월 초에는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흉내내는 캐나다 방송 코미디 프로그램의 장난전화에 속아넘어가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이 되시길 바란다"는 가짜 사르코지 대통령의 말에 "아마도 8년 후에는"이라고 대답해 대권 도전 의지를 들키기도 했지요.

여기에다 주지사 재임 중 휘두른 인사전횡, 명품 옷을 구입하는데 당의 선거자금 15만달러를 사용했다는 비난 등이 겹쳐 선거 후반에는 오히려 공화당의 표를 깎아먹는 블랙홀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녀의 옷치장과 스타일리스트 고용비는 헐리우드 특급 배우들이 영화제 참석을 준비할 때 쓰는 비용과 맞먹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호주의 한 칼럼니스트는 "시골 출신의 벌집머리 여성이 가족, 애국심 등의 가치를 앞세워 스타로 떠오르는 과정이 마치 형편없는 미국 TV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다"고 비난하기도 했더군요.



하지만, 페일린이 40대의 아직 젊은 정치인이며 지나온 길보다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되는 여성이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대선 이후, 첫 대중 연설이었던 조지아주 연방 상원의원 결선투표 현장은 그녀의 이름을 외치는 수천명의 청중들로 가득찼습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조그비가  2만5000명을 대상으로 4년 뒤 대선에서 선호하는 후보를 조사한 결과, 페일린은 공화당 지지층에서 24.4%의 지지율로 1위에 올랐습니다. 조그비 측은 "대선 기간 동안 언론의 부정적 보도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의자와 총기 소유를 주장하는 정통 보수층에선 페일린 지지가 확고하다"며 "2012년 공화당 예비선거 때 강력한 이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이런 일련의 이야기들을 접하다보면, 역시 정치는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페일린에 열광하는 대중들은 그녀의 정치적 업적이나 적합성보다는 44세의 나이로 다운증후군 아들을 낳은 억척 엄마, 임신한 딸과 군대 간 아들을 둔 여성이라는 인간적 모습에 주목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대중적 인기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지요. 어느 날 갑자기 만인의 연인으로 떠올랐다가도 다음 날이면 모두에게 잊혀지는 것이 현실이죠. 이미지에만 기대는 정치인의 수명은 짧을 수 밖에 없습니다. 대중의 취향은 진화하니까요.

과연 그녀가 '가짜'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말했듯 '8년뒤의 대선 후보'로 성장할 수 있을런지. 이미지 외에 수긍할 만한 정치적 업적 또한 쌓아나갈 수 있을런지 지켜봐야겠지요. 

http://kr.blog.yahoo.com/eg_blog/3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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